[노동사회 2026년 제2호] 대만 노동이사제 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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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회 2026년 제2호] 대만 노동이사제 연수기

이명규 189 06.08 15:05

대만 노동이사제 연수기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이사 최고과정

작성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이명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이사 최고과정 연수단이 2026년 5월 대만을 다녀왔다. 한국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가 자리 잡은 지 몇 해가 지났지만, 노동이사가 이사회에서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연수단이 대만을 택한 것은 대만이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이사제를 20여 년 운영해 온, 한국보다 앞선 사례이기 때문이다.

연수는 2026년 5월 3일(일)부터 5월 9일(토)까지 대만 타이베이와 타오위안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연수단은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16개 안팎의 공공기관·지방공공기관 노동이사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관계자로 구성되었다. 참여기관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서울교통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승강기안전공단,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기술공사, 한국환경공단, 한국인터넷진흥원, SR, 서울의료원, 서울120다산콜재단, 부천문화재단, 서울연구원 등 중앙과 지방을 아울렀다. 전력, 철도, 도로, 수자원, 가스, 의료, 문화, 연구로 업종이 다양해 노동이사가 마주하는 현실도 기관마다 달랐다.

연수단이 방문한 곳은 다음과 같다.

- 대만전력공회(台灣電力工會, TPLU)와 대만전력공사(台灣電力公司)

- 대만석유공사(台灣中油, CPC Corporation, Taiwan) 타오위안 정유공장(桃園煉油廠)

- 대만석유공회 제6분회(台灣石油工會 第六分會, TPWU Branch 6)

- 대만 노동부(勞動部, Ministry of Labor)

- 전국산업총공회(全國產業總工會, TCTU)

- 대만석유공회(台灣石油工會, TPWU)

전력과 석유라는 대만의 핵심 국영 에너지 기업, 그 기업의 본부 노조와 현장 분회, 노동행정을 총괄하는 노동부, 민주적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노총을 두루 만난 일정이다. 노동이사제를 이사회 안의 제도로만 보지 않고 기업과 현장, 정책, 노동운동이 맞물리는 자리에서 확인하려 했다.

왜 대만 노동이사제인가

대만 노동이사제는 1990년대 민영화 국면에서 등장했다. 국영기업 노조들은 고용 불안과 단체교섭력 상실을 우려해 요구를 민영화 저지에서 경영 참여로 옮겼고, 그 결과 노동자 대표에게 이사회 의석의 5분의 1을 보장하는 국영사업관리법 제35조 제2항이 2000년 제정되어 이듬해 시행되었다. 2003년에는 적용 범위가 넓어져 민영화 이후에도 민영화 기업의 정부 자본 합계가 20%를 넘는 기업은 정부 지분 대표 이사 중 최소 1명을 노조 추천 대표로 두게 되었다. 다만 일반 민영·상장기업에는 의무가 없다.

또 하나의 전제는 단체교섭의 효력 구조다. 대만 단체협약법 제10조는 공영사업기관이 당사자인 단체협약은 체결 전에 주무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승인 없이 체결하면 효력이 없다고 정한다. 임금과 복리후생도 행정원과 경제부 기준에 묶인다. 노사가 서명하면 원칙적으로 효력이 생기는 한국과 달리 대만은 정부 승인이 효력의 조건이다. 이런 구조에서 노동이사제는 단체교섭을 대체하기보다 경영정보 접근과 구조조정 감시, 민영화 대응으로 노조의 교섭력을 보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대만전력공회의 노동이사제

첫 간담회는 5월 4일 대만전력공회에서 열렸다. 대만전력공회는 대만전력공사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다. 회사 정관에 따라 이사회는 15명이며 정부·학계 대표 9명과 독립이사 3명, 노조가 추천한 노동이사(勞工董事) 3명으로 구성된다. 법은 노동이사의 의석과 회사 차원의 틀만 정하고, 노동이사를 어떻게 뽑고 감독할지는 노조가 같은 법의 위임을 받아 만든 내부 규정이 정한다. 노조 대의원대회가 2005년 제정해 다섯 차례 고쳐 온 「이사선거방법(董事選舉辦法)」이 그것이다.

선출은 조합원 직접투표가 아니라 129명의 대의원(會員代表)으로 구성된 대의원대회가 맡는다. 후보 자격은 현직 대의원으로 한정되고 임기는 회사 이사회와 같으며 연임은 한 차례 가능하다. 노조 임원이나 전임자가 노동이사로 당선되면 그 노조 직책은 자동으로 상실되어 겸직할 수 없으나 조합원 신분은 유지된다. 노동이사가 되면 노조에서 탈퇴해야 하는 한국과 갈리는 지점이다.

노동이사를 떠받치는 조직 장치가 인상적이었다. 대만전력공회는 대의원대회가 뽑은 위원 15명으로 노동이사 자문위원회를 두고 매월 이사회 3일 전에 회의를 연다. 노동이사는 이 회의에 직접 참석해야 하고, 이사회에 낼 제안은 자문위원회의 결의를 거친 뒤에야 제출할 수 있다. 회사는 이사회 5일 전에 의제와 자료를 제공하고 노동이사는 회의가 끝나면 서면으로 보고한다. 보수 면에서 노동이사는 회사 직원으로서 받던 임금을 그대로 받을 뿐 별도의 이사 보수가 없고, 선거 규정은 직무로 생기는 소득을 출석비만 빼고 전액 노조 투쟁기금에 기부하도록 정한다. 이해충돌은 친족 관계에서 엄격히 관리되어, 당선 뒤 3촌 이내 친족이 회사와 거래 관계에 있으면 교체 사유가 된다. 결의를 위반하거나 조합원 권익을 해치면 감사회 조사를 거쳐 대의원대회 표결로 해임할 수 있다. 노동이사는 부서 관리자 임명에는 참여하지만 징계위원회에는 참여하지 않아 인사에서도 임명과 징계가 나뉜다. 노동이사를 개인이 아니라 노조 조직이 집단으로 떠받치는 구조였다.

노동이사제는 회사 차원의 노사 소통체계 위에서 작동한다. 대만전력은 부서·부문·전사 세 층위의 노사협의회(勞資會議)를 운영해 2025년 한 해에만 350회를 열었다. 제도는 2003년경 시행되어 초기에는 발언 범위와 임금·성과급을 둘러싼 충돌이 잦았으나, 위원장(理事長)의 조정과 자문위원회 같은 내부 검토체계가 자리 잡으며 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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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석유공회의 노동이사제

5월 7일과 8일 연수단은 대만석유공사(CPC)와 대만석유공회를 만났다. CPC는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국영 석유화학 에너지 기업으로 이사회 15명 가운데 노동이사가 3명이다. 한국 공공기관 노동이사가 대체로 1명인 것과 큰 차이다. 선출 방식은 대만전력과 달라 조합원 직접선거가 아니라 노조 집행위원회(理事會)가 맡는다. 대만석유공회는 이 방식이 노동이사 사이의 결속과 공동 방향성을 높인다고 보았다. CPC 노동이사도 개인이 아니라 노조를 대표해 참여하며 집행위원회와 대의원대회의 결의에 구속된다.

노동이사가 3명이라는 점은 이사회 안의 전략을 가능하게 했다. 한 명이 모든 책임을 지지 않아 공동 대응이 가능하고, 한 사람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면 다른 사람이 조정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눈다. 표결에서는 15명 중 3명이라 소수이지만 반복 질문과 자료 요구, 표결 전 충분한 토론 요구, 반대 의견의 회의록 기록 같은 의사규칙을 활용한다. 노동이사 선출에서는 정유와 유통, 탐사·생산 등 주요 부문이 고려되어 노동이사가 구체적 현장 지식에 기반하도록 한다. 대만석유공회가 노동이사제의 효과로 첫손에 꼽은 것은 회사 재무의 투명성이었다. CPC가 2024년 한 해에만 약 355억 대만달러의 적자를 낸 상황에서 노동이사는 경영과 재무, 조달, 투자, 인사를 감시한다. 노조는 과거 부실경영과 자산 유용으로 대량실업이 빚어진 폐업 사례를 들며 노동이사가 있었다면 피해를 더 일찍 줄일 수 있었으리라고 진단했다. 대만석유공회는 본부에 구매심의와 퇴직금 감독 등 분야별 위원회를 두어 회사의 조달과 100억 대만달러대의 퇴직준비금을 점검하며, 노동이사제 도입 전 복지와 노동조건에 머물던 노조 활동이 이후 회사 경영과 재무까지 닿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전환도 과제다. 노동이사가 회사의 전환 계획을 미리 파악하면 노조는 재교육과 직무전환, 고용안정을 준비할 수 있다. 같은 날 방문한 대만석유공회 제6분회는 노동이사제가 현장 분회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노동이사가 이사회에서 경영과 투자, 안전, 재무를 검토하려면 현장 분회의 정보와 조합원 의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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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노동이사제의 공통 특징

여러 곳의 간담회를 관통하는 특징은 분명했다. 노동이사제는 국영기업과 정부 지분 20% 이상 기업에 법적 의무이고 이사회의 5분의 1을 노동이사로 선출해야 한다. 다만 일반 민영·상장기업으로의 확대는 아직 노동계의 요구 단계다. 전국산업총공회(TPTU) 위원장은 상장기업에 노동이사를 의무화하는 회사법 개정 요구가 노조 권한 확대가 아니라 산업민주주의와 경영 투명성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전력과 CPC 모두 노동이사가 3명인 복수 구조여서 이사회 안의 고립을 줄이고 역할 분담이 가능하다. 노동이사는 노조에서 추천 또는 선출되고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며 노조 결의에 구속된다. 노동자 권익을 이사회에서 대변하는 것은 이해충돌이 아니라 본래 역할로 이해되고, 이해충돌은 친족 특혜나 사적 이익으로 한정된다. 무엇보다 노동이사는 자문위원회나 노조 집행위원회·대의원대회를 통해 조직적 지원을 받으며, 제도의 효과는 재무 투명성과 부실경영 감시, 산업전환 대응, 공공성 강화로 설명된다.

한국과 대만 노동이사제 비교

비교

항목

한국 — 지방(조례)한국 — 중앙(공운법)대만 — 국영기업
법적 근거지자체 조례(서울시 2016년 최초). 상위법 근거 미비공공기관운영법(2022년 8월 시행)국영사업관리법 제35조 제2항 + 노조 내부 선거규정
적용 대상조례를 둔 지자체 투자·출연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국영기업 및 정부 지분 20% 초과 기업(일반 민영·상장기업 제외)
노동이사 수조례별(서울시 정원 100명 이상 1명에서 300명이상으로 후퇴)규모에 상관없이 기관에 1명정부 지분 대표 이사의 1/5 이상. 대만전력·CPC 모두 3명
선출·추천조례별. 서울시는 직원 직선과반수 노조 추천 또는 근로자 과반 동의 → 임원추천위 → 임명대만전력공회는 대의원대회 선출, 대만석유공회는 노조 집행위원회 선출
조합원 신분탈퇴(노조법상 이익대표자 문제)탈퇴유지. 단 노조 임원·전임직은 당선 시 자동 상실
보수·직무소득비상임이사 수당·실비비상임이사 수당·실비대만전력공회는 이사 직무소득이 발생할 경우 노조 투쟁기금에 기부
자문·지원법정 자문기구 없음(노동이사협의회는 자발적)법정 자문기구 없음(노동이사협의회는 자발적)대만전력공회 15인 자문위, 대만석유공회 집행위원회·대의원대회
노조와의 관계탈퇴로 공식 연결 약함동일노조 대표로 참여, 결의에 구속, 회사 자료 사전 검토
이사회 내 권한일반 이사와 동등. 지원 미비일반 이사와 동등. 1명이라 고립되기 쉬움일반 이사와 동등. 3명 복수 구조, 반대의견 회의록 기록

함의와 과제

대만 사례가 한국에 주는 함의는 권한과 수, 대표성, 지원체계, 책임성으로 모인다. 한국 공공기관 노동이사는 대부분 1명이라 이사회에서 고립되기 쉽다. 대만전력과 CPC의 3인 구조는 기관과 이사회 규모에 따라 노동이사를 복수로 확대할 근거가 된다. 권한도 일반 이사와 동등하게 안건 심의·의결권, 자료 요구권, 반대의견 기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대표성에서는 대만이 노동이사의 노조 임원직만 내려놓게 하고 조합원 신분은 유지시킨 방식이 참고가 된다. 한국도 탈퇴 여부를 기계적으로 다루기보다 조합원 신분 유지와 집행직무 제한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임금과 노동조건에 의견을 내는 것은 본래 역할이며 이해충돌은 친족 특혜와 사적 이익으로 한정하되, 대만전력공회처럼 친족 회피와 직무소득 기부 같은 청렴성 절차도 함께 두어야 한다.

지원체계는 특히 약한 고리다. 대만전력공회의 15인 자문위원회와 대만석유공회의 집행위원회·대의원대회는 노동이사를 개인에게 맡기지 않는다. 한국 노동이사는 안건을 혼자 검토하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과 시간, 정보에서 한계가 크다. 노동이사협의회와 노동조합, 외부 전문가가 결합한 사전 검토체계와 활동시간·활동비 보장이 필요하다.

끝으로 대만 노조는 제도의 효과를 노동자 권익만이 아니라 재무 투명성과 부실경영 감시, 공기업의 지속가능성, 산업전환 대응으로 설명했다. AI와 에너지 전환처럼 큰 변화 앞에서 노동이사는 전환 계획을 미리 파악해 재교육과 직무전환, 고용안정, 성과 공유를 이사회 안에서 제기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다만 대만은 단체협약이 주무기관 승인을 받아야 효력이 생기는 구조여서 노동이사제가 짊어지는 무게가 한국과 같지 않다. 그럼에도 대만 사례는 한국 노동이사제가 상징적 참여를 넘어 실질적 경영감시와 산업민주주의로 가는 데 필요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